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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이 아빠의 1일차 일기 본문
오전 11시 30분, 오전에 마지막 남은 짐을 정리했다. 와이프가 미리 짐을 대부분 싸놔서, 마지막 남은 것들만 정리했다. 노트북이랑 충전용 케이블만 확인하면 됐다. 그럼에도 나와서 생각해 보니, 안경 렌즈클리너랑 와이프 몰래 챙기려던 일기장이 빠져있던 게 생각났다.
병원에 와서, 초음파로 아이 위치만 확인하고 1인실 안내를 받았다. 1인실이라 자유롭게 있을 수는 있지만, 뭔 할 수 있을만큼 여유가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리고 방이 생각보다 많이 더웠다. 와이프는 병원복으로 갈아입고, 위에 병원 가운까지 걸친 상태로 태동검사를 했다. 수술이 아니기에 보호자였지만 수술실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중간에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와서 설명해 주시기를, 와이프보다 2시간 전에 수술 약속이 잡혀있던분이 어제 밤 응급으로 수술을 하게 되서, 원래 계획이었던 3시 시술이 아닌 2시에 아기가 나오게 일정이 변경되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다시 와이프랑 1인실에 돌아왔다. 태동검사를 하는 동안 왁싱이랑 수액까지 껴둔 상태였어서, 뭔가 하기는 힘든 상태였다. 너무 어색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오후 1시 40분에 다시 수술실로 갔다. 이때는 나도 수술실에 들어간다. 들어갈 때 병원용 가운을 걸치고 두건을 쓰니까 조금 아빠가 되는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수술실과 분만실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정확히 내가 들어가는 장소는 분만실이고, 여기서 와이프랑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한다. 우리는 장난이나 치는 철부지 어른들이라서, "잘다녀와" 같은 어색한 말은 하지 않았고, 어색하게 웃다가 와이프를 보냈다.
2시가 되기 전에, 나는 분만실에서 수술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만실에는 지브리 BGM이 틀리고 있었는데, 분만 예정 시간인 2시 정각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이었던 인생의 회전목마가 재생중이었다. 새 삶을 시작하는데 이런 노래라니 뭔가 굴곡이 많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 6분, 수술일 안에서 아기 우는소리가 들렸다. 아기 우는소리는 어쩐지 고양이 소리같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이 어째서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저 소리가 우리 아이가 아닐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산모도 있지 않을까) 했으나, 1~2분 지나서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듣고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쪽에 산부인과 검색할 때 자주 본 보호자 의자가 있었고, 옆에는 정말 "핏덩어리"가 있었다. 이게 내 딸이라니.
눈코입, 팔다리와 손가락 등을 확인하고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탯줄에 가위를 대는데 막 손을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회색의 탯줄은 너무 질겼다. 가위를 꾹 누르면서 자르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자르다보니 가위가 아이 허벅지에 닿았다. 아기 생길때부터 아기가 나오는 순간까지, 나름 한번도 당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순간은 뇌가 멈추는 느낌이었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어.. 여기 ... 어 .. 피 어 어 피 어어 여기" 하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간호사 선생님 말로는, 이 가위가 뭉툭해서 살을 찌르지 않고, 허벅지에 묻은 피는 탯줄에 남은 피라고 했다. 다시 허벅지를 보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하니 지금까지도 안심하고 있다.
그리고 무게를 쟀다. 아기는 3.44kg가 나왔다. 와이프 배에 이렇게 큰 아이가 들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이는 계속 울면서 움직인다. 어제 밤까지 와이프 배속에서 그렇게 열심히 움직이더니, 간호사 선생님도 아이가 활동성이 좋다고 하신다. 아이가 계속 우는데,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지만 어째서인지 "엄마" 하고 우는 것 같았다.
이후에 보호자 지정석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간단하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고, 이후에 영상편지를 찍었는데 정말 20초 넘는 시간동안 한마디도 말을 못했다. 사실 지금도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들고있는 내내 아기가 울었는데, 아빠가 안자 울음이 그친다던가 하는건 없었다. 다만 품 안에 안길 정도의 크기였고, 포대기로 쌌는데도 등의 움직임이 느껴져서 아주 조심조심 토닥였다. 아이가 아빠라는걸 알았을까.
오후 3시쯤,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졌고, 나는 다시 분만실에서 기다리다가 수술이 끝난 와이프가 들어왔다. 와이프는 여기서 2시간정도 회복을 하고 1인실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 돌아온 와이프는 마취가 덜 깨어서 횡설수설 하는데, 이 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여기저기에 출생신고를 했다. 그리고 와이프한테 괜찮은지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어느순간부터 와이프가 울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거의 30분 이상을 울었는데, 그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와이프가 통증이 있다고 해서 무통주사를 누르면서 좀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많이 아픈 것 같다. 간호사 분들께 말씀드렸더니 잠시 뒤에 1인실로 돌아간다고, 이 전에 진통제 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해서 이걸 맞고 1인실로 돌아왔다. 나는 5분정도 미리 올라왔고 와이프를 수술용 침대에서 1인실 침대로 들어서 옮겼다. 그동안 운동한 보람이 있는 첫 시간이었다.
오후 5시부터는 와이프도 회복이 많이 되어서 대화가 가능한 상태까지 회복이 되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도 산모와 자녀 모두 양호하다고 하셔서 안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는 1인실의 온도가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더워서 지금까지도 좀 고생하고 있다. 와이프는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남아있는 듯 했고, 답답함을 호소하다가 잠시 뒤에 구토를 했다. 먹은게 없기에 그냥 맑은 토만 했는데, 아이 낳는게 무슨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고통받나 하는 마음에 참 안쓰러워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후에는 와이프 컨디션이 매우 좋아졌다. 아마도 약 때문에 소화가 안좋았나보다.
오후 6시까지 방을 정리하거나 의사선생님 면회를 보거나, 아니면 방 안내를 받는 등 시간을 보냈다. 보호자 식사를 시킬까 했다가, 혼자 밥을 먹기도 애매했고, 6시에 신생아 면회가 있어서였다. 아래층의 신생아실로 갔는데, 지금 보는 아기는 아까와는 달리 깔끔하게 씻은 상태였다. 여전히 내 아이인가 싶은 얼떨떨함도 남아있다.
아기는 울다말다 하는데, 울음 소리가 유리 밖까지 들렸다. 혹시 예체능쪽으로 키워야 하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아이 사진과 영상을 계속 찍는데, 이걸 언제까지 찍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많이 찍었는지 아니면 반대인지, 다른사람들이랑 비교하면 부성애가 없는 아빠로 보일까, 혹은 아직 부성애가 없는게 드러날까 하는 생각들이다. 마침 신생사실 선생님이 그만 찍으셔도 된다고 언질을 해주셔서 다시 1인실로 복귀했다.
1인실이라서 편하게 있는 게 큰 장점이지만, 일부 단점도 있다. 일단 제일 큰 문제는 덥다는 것이다. 내일쯤 집에 가서 미니 선풍기를 갖고 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하나 더 힘든 건, 책상이 없다는 것이다. 보호자 침대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는 중인데, 와이프만큼 불편하지는 않지만 이것도 나름 고역이라면 고역이다.
이제는 와이프도 매우 컨디션이 좋아져서 대화도 많이 하고, 전화도 가능한 컨디션까지 왔다. 아기 사진을 보는데 계속 못생겼다고 하는데, 아기 얼굴은 매일 바뀐다고 하니까 내일은 이쁘거나 잘생기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무사히 태어난 아이랑, 무사히 수술 마치고 나온 와이프에게 감사하며 첫날이 지나간다.